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가야4리
2022-05-21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는 현재는 군부대 전차훈련장이 되었다. 오현리에 거주하던 주민 중 80여 가구는 2014년 법원읍 가야4리에 집단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현재까지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이주 이전 오현리는 오현1리와 오현2리로 구분되어 있었고 오현1리에는 샘골, 욋고리, 동두라지, 절골, 양가터, 오릿골, 웃오릿골, 황반리 등 마을이 있었고 오현2리는 스르래미, 멀원리, 욋골, 부잣골, 이터, 구서개골, 배나뭇골 등 마을이 있었다. 인구가 가장 많을 때는 오현 1리에만 150가구가 살 정도였지만 2014년 나올 시기에는 사실상 1, 2리 다 합쳐서 140~150호 정도가 되었다. 오현리는 논과 밭이 반반 정도되는 동네였지만 지역 자체가 구릉지에 위치해 있어 논도 “다락배미”, 즉 계단식 논이 많았고 토양에 돌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다. 특히 오현1리의 토양에 돌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오현2리는 황토 토양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현리 옛말에 “돌이 오줌싸서 곡식이 잘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오현리의 밭에는 “각담” 혹은 “돌담”이라 불렀던 돌무더기가 밭 중간 중간에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밭을 갈다보면 돌이 너무 많이 나와서 치워야 하는데 너무 많은 돌이 나오기 때문에 밭 중앙에 그냥 던져놨고 그것이 쌓이다보니 각담이라는 형태로 돌이 쌓이게 됐고 밭을 갈 때는 이 각담을 피해서 밭을 갈았다고 한다. 오현리의 이러한 토양적 특징은 논과 밭의 쟁기 이용이 호리쟁기와 겨리쟁기로 분화되는데는 영향을 미쳤으나 호미 형태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다만, 돌이 많아서 호미를 사용할 때마다 “다그닥다그닥"하는 소리가 많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오현리의 논은 천양수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천수답이 대부분이어서 비가 오기 전에는 모를 심기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대략 곡우에 못자리를 낸 후 망종즈음에 모를 냈다. 모심는 방식은 주로 “막모"라고 하여 줄을 띄워서 내지 않았으나 “기술자"들은 줄 간격을 딱딱 맞춰서 모를 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막모” 역시 이후에 줄을 띄워서 모를 내는 정조식 모내기 방식으로 변화했다. 모를 낸 이후 논에 김매기를 하였는데 논을 김매는 쪽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 이유는 논농사는 주로 남성이 경운부터 시작하여 수확까지 주로 담당한다고 여겼고 밭농사는 경운을 제외한 일은 여성이 주로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현리에서 논을 김매는 횟수는 부지런한 사람의 경우 3번 했지만 대개 2번만 했고 첫번째 김매기 때, 논호미를 썼고 두번 째 때는 손으로 맸다. 논호미는 밭호미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으며 이 호미로 땅을 뒤집는데 논호미로 땅을 뒤집으며 김을 맨 이유는 그렇게 흙탕물이 생기면 비료나 퇴비가 부족한 당시의 논에 큰 비료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논호미로 초벌한 후 손으로 두벌할 때는 남아 있는 풀을 손으로 뽑은 후 그것을 다시 논바닥에 박아넣었다. 밭농사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1년 2작으로 10월경 고랑에 보리 파종한 후 보리를 수확하기 이전인 4월경에 이랑을 쇠스랑으로 정지한 후 뒷굼치로 자국을 낸 후, 콩을 파종한다. 보리 수확은 하지에 한 후, 콩과 콩 사이에 수수를 심고 이를 오현리에서는 “수수 부룩친다"고 하며 10월즘에 콩과 수수를 수확했다. 그리고 콩 대신에 조를 이랑에 심는 경우도 많았다. 밭농사에서 호미는 주로 김매기에 중점적으로 사용됐는데 보리농사는 김을 거의 매지 않아 호미를 거의 쓰지 않고 콩은 김을 2번 매기 때문에 많이 사용했다. 오현리에서 보리농사에 김을 매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미 고랑에서 보리가 클 때는 풀이 나오지 않고 또 4월에 이미 콩을 파종하기에 굳이 보리를 재배할 때 김을 매지 않는다고 한다. 콩밭에 김매기는 특정 시기에 매는 것이 아니라 풀이 나면 콩밭을 맸다고 한다. 그렇지만 1970년대를 전후하여 오현리에서 호미 사용은 크게 변화했다. 우선 논농사에서 제초제가 등장했다. 오현리에 제초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로 정부에서 처음 제초제를 나눠줬는데 제초제를 사용한 이후부터 논농사에서 풀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논호미가 사라졌다. 밭농사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오현리 밭농사 작부 체계가 원예작물 중심이 되어 참외, 수박 등을 봄부터 여름까지 키우고 이후에는 배추나 무 등을 심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즉, 8월까지 참외, 수박을 키우고 8월 이후 배추, 무 등을 심어 김장철에 출하하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배추 같은 경우, 잎이 퍼지면서 커서 콩과 조 같이 김을 자주 매주지 않고 1번 정도만 매주면 괜찮았다. 무엇보다 오현리 주민들은 “비니루 나오고 나서 농사가 엄청 발전이 된 거지” 라고 말할 만큼 비닐 멀칭으로 큰 효과를 얻었다. 비닐 멀칭의 효과는 제초 외에도 보습과 보온 효과도 거둬서 비닐멀칭을 해야 작물 수확량이 많아진다고 했다. 현재 가야4리에서는 외귀호미와 양귀호미를 모두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외귀호미를 쓰다가 이후 양귀호미가 들어왔다고 주민들은 기억했다. 외귀호미와 양귀호미 사용 방식에 차이가 있었는데 외귀호미는 콕 찍어서 풀을 제거하고 양귀호미는 긁는 방식으로 풀을 제거한다고 했다. 외귀호미는 1970년대까지도 논호미와 밭호미로 구분했고 두 호미 모두 외귀호미 형태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논호미는 밭호미보다 그 크기가 크고 무거웠다. 그리고 이 호미는 모두 자루가 짧았고 서서 쓰는 호미는 없었다고 한다. 오현1리에 살았던 신종호(1941년 생)는 예전에 양주 갓바위장에서 구입한 호미가 있다. 이 호미의 특징은 날에 구멍이 하나 나있는데 신종호에 따르면 품앗이를 할 때 사람이 많이 모여 호미가 섞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호미임을 표시하기 위해 특별히 갓바위장의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구멍을 냈다고 한다. (부록- 가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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