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2리 평동
2022-04-29
각성바지 마을인 평동은 해안가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해안가 평탄지가 아닌 산지에 위치한 마을이다. 평동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기면 신창리 기밀이라는 곳에서 1950년 평동으로 시집을 온 허순난은 평동이 기밀과는 많이 다른 동네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예를 들어 기밀은 논농사가 많지만 1950년대 평동은 현재와 달리 논은 거의 없고 밭농사가 많은 지역으로 1970년대까지도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중점적으로 이뤄지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마을 내에서 농업만큼 중요한 산업이 한지 제작으로 한지를 만들어 쌀을 사서 먹는 집이 많았고 쌀을 비롯한 곡물이 풍부하지는 않아 “보리밥이라도 풍족하게 먹으면” 잘사는 집일 정도여서 쌀이 상대적으로 풍족했던 기밀 온 허순난의 고향과 다른 풍경이었다.
평동에서 호미 이용 중 눈에 띄는 점은 논농사에 호미를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동에서도 한국 내 일반적인 논농사와 마찬가지로 논에 모내기를 낸 후 김매기를 하고 그 횟수는 2번이었다. 논에 제초작업을 하는 것을 김맨다고 표현하지 않고 평동에서는 “논맨다"고 표현한다. 처음 김매는 것을 “아시벌매기” 두번째 김매는 것을 “두벌매기"라고 하는데 2번 모두 손으로만 매었다.
논에서 제초할 때 호미를 쓰지 않는 것은 평동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기밀에서도 두번 김을 맸는데 이곳 역시 손으로만 김을 맸다. 손으로 김을 맬 때는 논바닥에 손을 넣은채로 풀을 뽑은 후 이를 다시 논바닥에 쑤셔 넣는 방식이었다.
호미는 논에서 제초할 때 쓰지는 않았으나 논에 물길을 낼 때 호미를 사용했다. 그렇지만 이때 쓴 호미는 밭에서 쓰는 호미와 동일한 형태의 호미였으며 호미로 논의 물길을 관리한 것은 주로 여자들이고 남자들은 삽을 이용해 논의 물길을 관리했다.
평동의 밭농사는 주로 보리-콩 또는 보리 - 조 등의 1년 2작 형태가 주를 이뤘다. 이때 콩이나 조 및 기타 작물의 파종은 보리를 베어낸 후 이뤄지는 그루갈이 형태를 이뤘졌다. 콩은 주로 메주콩으로 보리를 수확한 후 이를 갈아엎은 뒤인 양력으로 56월에 파종한다. 평동에서 콩 파종 방식은 조파(조파)한 후 손으로 흙을 덮는 방식이었다. 허순난에 따르면 기밀에서는 평동과 달리 콩을 뿌린 후 손이 아니라 다시 소가 끄는 훌치질을 통해 콩 위로 흙을 덮었는데 평동에서 손으로 흙을 덮은 이유는 평동 사람들이 훌치질할만큼 소 다루는 실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밭을 김맬 때는 호미를 주로 사용했다. 콩은 2번 정도 매줘야 하는데 첫번째는 파종한 후 싹이 올라왔을 때로 이때는 제초를 하면서 동시에 조파한 콩을 솎아내는 작업을 동시에 한다. 두번째 김매기는 제초에 초점을 뒀다. 그리고 나서 양력 9월에 추수를 한다. 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김을 2번 매주지만 추수시기는 벼와 비슷하여 콩보다 추수시기가 늦었다. 콩이나 조의 추수가 끝나면 다시금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간 후 보리를 파종하는데 보리 역시 콩과 같이 2번 김매줬다. 음력 2월 보름쯤에 김을 한 차례 매줬고 두번 째 김매기는 음력 3월 초순에 행하는데 김매기가 끝나면 보리 이삭이 패었다.
평동에서 논 김매기는 주로 남성들의 일이였으나 밭을 김맬 때는 여성들이 주로 했는데 기본적으로 가족노동력으로 김을 맸지만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면 품앗이로 노동력을 충당하거나 “놉”, 즉 일꾼을 고용해서 김을 매기도 했다. 19501960년대 허순난 가족의 경우, 경작지는 밭 2400평, 논 500평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1950년대에는 학업, 1960년대에는 회사원과 자영업로서 농업 이외의 업종에 종사하였으므로 집안의 농사는 주로 그녀가 노동과 경영해야 했다. 그러므로 허순난은 가족노동력만으로 농사일을 다 하기 어려워 품앗이와 일꾼 고용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동력을 수급해야만 했다. 우선 평동에서 품앗이는 평동 내에서만 주로 이뤄졌는데 다만 1대 1로만 꼭 교환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손을 도와준 집에 일을 해주러 가야 했지만 일손을 도와주러 오는 집에서는 허순난의 집으로 23명이 오기도 하지만 허순남의 집안은 일손이 부족하기에 혼자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매기를 중심으로 농사일에 많이 쓰이던 호미의 쓰임새는 “풀약"이 등장하면서 달라졌다. 평동에서도 1970년대부터 등장한 “풀약"은 보리와 밭의 김매기에서 호미의 사용빈도를 감소시켰고 평동 인구가 전반적으로 고령화되면서 경작지 역시 산간지대의 밭과 논을 중심으로 줄어들게 됐다. 작물 자체도 보리 재배면적이 크게 줄어들었고 더이상 밭에 이모작을 하는 농가도 크게 줄었다. 대신 19701980년대 이후 평동에도 과수원이 등장했는데 포도밭이나 사과밭에서도 호미로 과수원 주변 푸을 제거했다고 한다.
이처럼 평동의 농업환경은 변화했지만 여전히 호미는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로 인식된다. 현재도 마찬가지였다. 2022년 허순난은 89세 고령으로 무릅과 허리가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하기에 예전과 같이 농사일을 할 수 없으나 여전히 100여 평의 밭과 집앞 텃밭에서 조, 들깨 및 각종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이처럼 작은 규모의 농업을 하는 허순난에게 호미는 작물을 관리하기 위해 여전히 필수적 농기구이다.
허순난은 현재도 호미를 주로 풀을 뽑는 용도로 사용한다. 허순난이 사용하는 호미는 크게 3종류로 외귀호미 2종류, 양귀호미 1종류이다. 부록에 수록된 <방산-1>과 <방산-2>은 외귀호미 2종류를 실측한 것으로 <방산-1>은 날이 넓은 외귀호미 종류로서 호미의 길이 30.1cm, 자루 12.5cm, 슴베 17cm이고 날은 두께 0.3cm, 날의 긴변 14.1cm, 13.5cm, 9cm였다. 이 호미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지만 주로 날의 넓은 변을 이용해 풀을 긁을 때 많이 사용한다.<방산-2>의 상대적으로 날이 좁은 호미는 길이 30.2cm, 자루 : 12.5cm, 슴베 17.2cm이며 날은 가장 긴 변이 11.5cm, 11.3cm, 7.1cm이다. 이 호미 역시 다양한 용도로 쓰지만 <사진 19>보다 폭이 좁아서 흙을 찍어내릴 때 사용하기 쉬우므로 뿌리가 깊은 풀을 제거할 때 쓴다.
고령의 나이와 무릎, 허리 등이 좋지 못한 허순난은 집안에서도 움직이기 위해서 보행기가 필수적이고 당연히 “동사(한자)“나 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보행기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보행기에는 항상 호미가 실려있다. 그리고 호미와 함께 “방석"이라 불리는 보조도구도 같이 가지고 갈 때가 많다.
허순난의 뒷집에 사는 “사형댁"은 허순난과 비슷한 연배로 현재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중심으로 감자, 옥수수, 양파, 보리 등을 경작한다. “사형댁"은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어 허순남보다 좀 더 넓은 면적을 농사 짓지만 그녀에게도 호미는 여전히 유용한 도구로 허순난과 마찬가지로 “방석"과 호미를 보행기에 넣어두고 밭으로 가져가 사용하고 있다. 호미의 주된 용도는 김매기이지만 수확할 때도 호미를 사용한다. 다만 여전히 호미를 가지고 하는 일은 “사형댁"이 주로 하고 남편은 스스로도 호미나 호미질에 대해 잘 모르단고 할 만큼 호미 사용이 적다.
사형댁이 가지고 있는 호미의 종류는 2종류로 외귀호미 1종류와 양귀호미 1종류이다. 평동에서 양귀호미는 외귀호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한 호미로서 “사형댁"이 가지고 있는 양귀호미는(사진 19) 길이 30.2cm, 자루 12.5cm, 슴베 길이 17.2cm이고 날은 대변부터 15cm, 11cm, 10cm이다. “사형댁"이 사용하는 양귀호미는 그 형태상 양변의 길이가 거의 같은 직각삼각형에 가까웠다. “사형댁"은 양귀호미를 풀이 많을 때 풀을 한꺼번에 많이 맬 수 있기에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다만 양귀호미는 뿌리가 깊이 있는 풀은 외귀호미보다 상대적으로 잘 매지지 않기에 그러한 풀이나 작업에는 외귀호미를 사용한다. 물론 호미는 김매는 곳에만 사용하지 않고 감자 수확이나 손으로 뽑히지 않는 양파 수확 등에 사용한다. 사형댁이 소유한 외귀호미는 2개로 현재 주로 사용하는 외귀호미 1(사진 20의 좌)은 길이 29.5cm, 자루 12.5cm, 슴베 16.3cm이고 날은 대변 14cm, ,13cm, 8.5cm였다. 그리고 현재는 집에서만 보관하고 있는 것이지만 “벙어리집"에서 제작했던 호미인 외귀호미2(사진 20의 우)는 길이 29.4cm, 자루 11.5cm, 슴베 16.5cm였고 날 12.5cm, 11.5cm, 8.5cm로 형태적으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호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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